몽골 패상 사진여행(2017.10.7~12) 철인 이광원
러시아모델 에이젼시 세르게이의 권유를 받았을 때만해도 낮 가림 심한 내가 앞면도 없는 사람들과 어울려 긴 여행에 참가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진 작품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나 여행이 주는 달콤한 기대보다는 고달픈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충동이 출발 일이 다가오며 그 가능성을 높여갔다.
짧은 기간 안에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반대급부로 받은 상대적 박탈감이나 스트레스는 상상외로 크다.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핵 공포의 위협이 상존하고,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야만 마음이 편한- 휴식을 죄악시했던 암울한 60년대를 살았던 세대의 피할 수 없는 강박관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 끈질긴 악연과 절교할 유일한 방법은 여기를 떠나는 것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가는 건지 여행을 가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건지에 대한 구분은 확실치 않다. 어쩌면 이 둘은 실과 바늘처럼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어느 때 보다 강하다. 여행비 Whotour(169만원)
2017.10.07(토)
1시에 출발하는 중국항공을 타기 위해 9시 40분 공항에 모여 긴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고 텐진으로 가서 버스로 8시간을 이동하여 내몽골에 위치한 패상으로 간다. 초원에서 말을 기르는 유목민들의 고장으로 알려진 패상, 투어를 기획한 김가중작가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누드사진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사진 계의 이단아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틀을 깬다는 건 항상 쉽지 않은 도전이다. 최첨단 전자기술을 내장한 카메라는 샤터만 제대로 눌러주면 해상도 높고 노출 정확한 사진을 만들어 주지만 자신의 창의적인 개념을 작은 종이 위에 집어 넣어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항공 기내식으로 빵을 하나 주었다.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에서 주인공이 소련의 수용소에서 받았다는 딱딱한 빵이 연상되었다. 물론 그 수용소 빵보다야 품질이 좋은 것임엔 틀림없을 것이나 기존 한국의 항공사가 제공하는 화려한 기내식에 비해 내가 느낀 절망감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 아닐까.
2시36분에 텐진공항에 도착했다. 스모그 가득한 잿빛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패상원정대 라는 거창한팀 명을 가진 우리 팀은 모두 26명이다. 먼저 도착한 팀(아시아나)과 합류하여 버스를 타고 패상으로 가면서 간단한 자기소개가 있었다. 주로 사진관련 경력을 얘기했다. 김가중선생이 날 대단한 사람이라고 얘기했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그는 날 잘 모르고 피상적으로 한 칭찬일 뿐이란 걸 알기 때문에 전혀 대단하지 않다고 밝히는 것으로 소개를 마쳐야 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 사진 외 경력은 중요하지 않고 내가 가진 사진경력은 이름만 들어도 오금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대가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우리의 리더 김가중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새 사진으로 유명한 소림 장병월선생이나 국제사진공모전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입상한 정기태선생을 위시한 우리나라 최고의 사진작가들이 모두 모여 있었으니…
위장진
패상가는 마지막 마을 위장진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고량주에 안주 삼아 먹는 돼지껍질 튀김요리가 일품이다. 기내에서 빵 하나 먹고 8시간 이상 아무것도 먹지 못해 요리가 더 맛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버스 안에서 roommate를 정했다. 가이드가 흡연자를 손들라고 해서 나의 roommate는 당연히 비흡연자라고 확신했다. Hotel에 도착하여 3008호를 배정받고 목포에서 단체(8명)로 온 팀 중의 한 명이 내 roommate란 걸 그때 알았다. 그는 내게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차에서 소주를 돌리고 휴게소 마다 담배 피우던 모습을 본지라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그냥 받아 드릴 수 밖에 없었다. 12시 넘어 겨우 침대에 들 수가 있었다.
2017.10.08(일)
잠을 깼다. 옆 roommate 가 무슨 일인지 모든 조명을 다 켰기 때문이다. 난 Lobby 로 내려 갈 시간이 된 줄 알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2시였다. 그가 화장실 가기 위해 취한 행동이란 걸 알고 조금 짜증이 났다. 창으로 비치는 달빛만으로도 화장실에 가는 건 그렇게 어려운 고난도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참 잘 시간에 깨어 버려서 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정작 문제는 아침에 발생했다. 5시 20분에 Lobby에서 만나 일출을 찍으러 가야 했기 때문에 4시45분에 알람을 맞추고 잤는데 일어나자 그 문제의 roommate가 담배를 물고 있었다. 담배연기에 극단적인 심리적 알레르기가 있는 내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 담배 피우실려고요?”
“아니”
그는 화장실로 들어갔고 거기서 담배를 피울 작정이었다.
“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면 연기가 빠져나가지 않으니 나가서 피우세요”
아마 내 목소리가 절대 부드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그는 주섬주섬 짐을 싸더니 아무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잠시 뒤 lobby에 내려 왔더니 그는 맑지 못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만을 내뱉고 있었다.
1분도 같이 있을 수 없는 사람이고… 사진 찍으러 와서 스트레스 받을 일없다며 집으로 돌아 가겠다고 중얼거렸다. 인간의 모든 기준은 자기자신이다. 그가 당연히 내세울 수 있는 권리(?)가 상대에게 엄청난 불쾌감과 건강까지 헤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우린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일분도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말을 이해한다. 흡연자와 비흡연자 사이의 갭은 상상외로 크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가 떠나고 난 혼자가 되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과 같은 공간을 사용한다는 건 큰 모험이다.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 배려한다는 건 일종의 스트레스다. 덕분에 난 끝날까지 혼자 방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마 그가 돈을 더 지불하고 독방을 신청한 것 같다.
투평거우 일출
지프를 3명 이서 타고 일출 찍으러 이동했다. 어둠이 자욱한 언덕을 힘겹게 올라 갔다. 얇은 파커를 입었지만 몹시 추웠다. 아침도 먹지 않고 10시 반경까지 사진 촬영을 했다. 멋진 일출을 찍겠다는 간절한 염원은 응답되지 않았고 원망스런 희뿌연 잿빛 하늘과 추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모두들 불평 없이 멀리 조그만 하게 보이는 양과 소떼, 그리고 자작나무숲을 열심히 메모리에 담고 있었다.
5명의 마부와 말
개울가로 이동하여 개울물을 박차고 질주하는 5명의 마부와 말 사진을 찍었다. 연막탄도 터트려보고 뭔가 엑센트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발버둥쳤으나 동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황홀한 태양을 대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막탄 연기를 보고 중국공안에서 연락이 와 더 이상 연막을 사용하지 못했다.
난징 자작나무
조그만한 호수와 야산, 자작나무숲이 멀리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40분 정도 자유로이 사진을 찍었다.
11시경 호텔로 돌아와 계란 하나 빵 하나 죽 등 간단하게 식사하고 룸에서 쉬다 12시 50분에 점심식사를 했다. 요리도 여러 개 나오고 그런대로 멋진 식사다.
아침식사
점심식사
라마산 자작나무숲
2시 반에 오후 촬영에 들어 갔다. 지프로 15분 정도 달려 라마산 자작나무 숲으로 갔다. 자작나무 숲을 배경으로 러시아 누드모델 야나와 말을 찍었다. 햇빛이 없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병풍처럼 늘어선, 장엄하기 조차한 자작나무 숲과 잘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말 질주 장면과 십 여대의 지프가 철수하는 장면도 찍고 지프로 작은 호수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장군포자
작은 호수가 있는 초원에서 서쪽으로 지고 있는 태양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튀기면서 질주하는 10여 마리 말 떼들을 사진에 담았다. 물위를 질주하는 말의 반영과 역동적인 모습이 저 멀리 서산에 걸린 붉은 태양과 잘 어울렸다.
도로 위의 실루엣
마지막으로 어둠이 완연한 도로에서 차량조명을 이용하여 야나의 실루엣을 시도했는데 파커를 벗지 않아 우아한 곡선이 없는 밋밋한 사진이 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분명 완전 누드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델에게 매몰차게 해가 져 완전 추워진 대지 위에 내몰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누군가 그 악역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양고기 샤브샤브
저녁은 호텔 근처 양고기 샤브샤브 식당에서 했다. 양고기가 그렇게 맛있는 고기란 걸 처음 알았다. 제공되는 고량주를 혼자서 2/3병 정도 마시고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Hotel로 돌아오는 길에 김가중 선생과 한국사진방송 총무와 만나 가이드 황성찬씨와 말 100마리를 빌릴 수 있는지를 협의하러 간다기에 따라 갔다. 말 100마리를 빌리려면 70만원이 든다고 한다. 더 넒은 초원을 질주하는 100마리의 말 떼들을 사진에 담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릴 것 같다. 말 100마리를 모으기 위해서는 여러 집과 미리 섭외를 해야 하는데 당장은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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